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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선박 대란은 예고된 미래였습니다.”

해운업계에 오래 몸담은 전문가들이 ‘선박 대란’ 사태를 보며 하는 말입니다. ‘코로나19’가 생길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전문가들이 이렇게 한목소리로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 코로나19는 ‘선박 대란’의 진짜 이유를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였을뿐, 숨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파워볼사이트

■ 3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내 대표 국적선사 ‘한진해운’

오늘의 이야기를 위해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지난 2017년 2월 17일, 국내 1위 국적선사에 파산이 선고됩니다. 바로 한진해운인데요. 한진해운은 당시 150척 가까운 선박을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운사였습니다. 세계 해운업계에서도 7-8위를 차지하는 규모였습니다.

눈앞의 수익만 쫓던 한진해운 경영진의 전략 실패와 도덕적 해이는 파산 한 해 전인 2016년, 회사를 법정관리에 처하게 만듭니다. 이를 계기로 해운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당시 박근혜 정부의 결정으로 한진해운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 코로나19시대, 선박들이 외면하는 기항지 한국…왜?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올해,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합니다. 이때문에 전세계 해운업계는 물동량이 급감할 것으로 보고, 선박에 화물을 실을 공간 이른바 ‘선복량’을 예상보다 줄였습니다. 하지만 마스크 등 각종 방역 물품에다 생필품과 가전 등 비대면 상품 수출이 크게 늘어났고, 연말을 앞두고 북미와 유럽 지역 소비 심리가 살아나며 수출이 다시 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선박 운임도 같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코스피 지수처럼 선박 운임을 수치로 나타내는 ‘상해운임지수’를 보면, 컨테이너 선박 운임은 지난 6월, 900 안팎이던 것이 10월 들어 1,400을 돌파하더니 지난달 말에는 2,000을 넘어 지금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박 운임을 끌어올린 장본인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 화주들이 부르는대로 값을 쳐주니 선사들은 중국으로 앞다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전세계 선박을 빨아들이고 있는데요, 이렇게 중국으로 간 선박들은 한국처럼 화물량이 적은 기항지를 굳이 들르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직항로로 화물을 꽉꽉 채워 갈 수 있는데 번거롭게 둘러갈 필요가 없는 거죠. 중국이라는 거대한 덩치에 밀려 수출에서까지 한국은 또 눈치만 보는 초라한 신세가 됐습니다.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 부메랑이 돼 돌아온 ‘한진해운 파산’…우리가 잃은 것은?

네, 맞습니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우리가 잃은 건 바로 ‘해운 주권’입니다. 3년 전 잘못된 결정이 코로나19 시대,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데다, 위로는 북한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섬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전세계를 이어줄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해운 물류입니다. 하늘길도 있지 않냐고요?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가 바로 뱃길을 이용합니다.파워사다리

이럴때 아쉬운 게 바로 국적선사입니다. 중국에 밀려 배를 구할 길이 없고, 운임까지 2~3배 뛰자 국내 수출업계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여기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으로 전세계 항만이 하역에 차질을 빚으며 선박이 항구에 장기간 묶여 빈 컨테이너 상자까지 동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서는 수출을 하려해도 화물을 담을 컨테이너도, 띄워보낼 배도 구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 컨테이너선
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 컨테이너선


■ 외국적 선사 의존도 높아…국적선사 수송비율 20% 안돼

국적선사를 이용한 미주와 유럽 등 주요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 수송비율은 20%에도 못 미칩니다. 외국적 선사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인 거죠.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 수송 능력이 크게 줄어든 탓입니다. 실제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2016년, 우리나라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은 105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1TEU)였는데, 올해는 70만TEU 수준입니다. 4년 사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35만개 분량의 화물을 실을 공간이 사라진 겁니다.파워볼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핵심 자산인 선박과 터미널도 모두 외국 선사에 넘어갔습니다. 만TEU급 컨테이너선은 덴마크 머스크가 6척을, 스위스 MSC가 3척을 가져갔습니다. 미-중 항로의 핵심인 롱비치터미널 역시 MSC가 인수했습니다. 이때문에 주요 수출 항로인 미주 노선의 점유율도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국내 해운산업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HMM알헤시라스호’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HMM알헤시라스호’


■ 다시 ‘해운강국’으로…내년까지 2만4천TEU· 만6천TEU 20척 투입

3년 전 한진해운이 파산할 당시, 우리는 해운산업을 구조조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통해 대형화하고 있는 국제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야 했습니다. 곧 다시 올 호황기를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죠. 바다를 품에 안기 위해선,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쫓기보단 저 멀리 대양너머를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며 HMM을 통해 지난 8월부터 미주 노선에 임시 선박 5대를 투입했습니다. 다음 달에도 2대를 더 투입한다고 합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해운강국의 의지를 천명하며 ‘세계 5위 해운강국’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이를 위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그 시작으로 올해 2만4천TEU 컨테이너 12척을 투입한데 이어, 내년에는 만6천TEU 컨테이너 8척을 더 투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고 했습니다. 큰 파고를 만나 배가 부서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우리가 해운강국으로 다시 우뚝서는 그날까지, 그 긴 항해를 함께 하겠습니다.

최지영 기자 (lifeis79@kbs.co.kr)저작권자ⓒ KBS(news.kbs.co.kr)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섀시 교체 작업중 화재 4명 사망·1명 중태..오늘 합동 감식
아수라장 속 주민 3명 구조한 사다리차 기사 뒤늦게 알려져

1일 오후 4시 37분쯤 군포시 산본동 소재 백두한양아파트에서 불이나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 뉴스1 조정훈 기자
1일 오후 4시 37분쯤 군포시 산본동 소재 백두한양아파트에서 불이나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 뉴스1 조정훈 기자

(군포=뉴스1) 조정훈 기자 = 11명의 사상자가 난 경기 군포 아파트 화재 현장 합동 감식이 2일 실시된다.

전날(1일) 오후 4시37분쯤 군포시 산본동 소재 백두한양아파트(25층) 12층에서 불이 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인원 70명과 펌프, 구조 등 장비 29대를 투입해 오후 5시 11분께 화재를 진압했다.

그러나 아파트 12층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피하던 2명이 건물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같은 동 주민 3명이 아파트 옥상으로 대피하는 과정에서 2명이 숨지고 1명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주민 6명도 대피 과정에서 경상을 입었다.

소방당국과 주민들에 따르면 최초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났는데 이곳에서는 섀시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현장에서는 전기 난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난로 주변에는 폴리우레탄과 시너 같은 가연성 물질도 발견됐다.

불이 난 가구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2명이 불길을 피하려다 건물 아래로 추락했다. 주민 3명은 급하게 옥상으로 대피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주민 3명이 발견된 장소는 불이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설비를 둔 권상기실 문 앞이다.

이 아파트 구조상 권상기실은 옥상문보다 한 계단 더 올라간 곳에 설치돼 있다. 꼭대기로 올라가 탈출을 시도하면서 옥상문이 아닌 권상기실 문을 열려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화재가 난 해당 동의 옥상문은 열려 있었지만, 권상기실 문은 잠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옥상문을 알리는 비상구 표시가 잘 보이지 않아 사상자가 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평소 이 아파트 옥상문은 폐쇄해둔 것으로 확인됐다. 옥상문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시 개방해야 한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당시 옥상으로 대피하려던 사람들이 비상구를 찾지 못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동주택의 옥상문 개방은 지속적으로 계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급박한 아수라장 속에 주민을 구조한 의인이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사다리차 기사 한상훈씨(29)다.

한씨는 당시 불이 난 가구에 인테리어 자재를 올리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었는데 ‘살려달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사다리차 운반카를 무작정 밀어 올려 구조작업을 벌인 끝에 3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한씨는 “생명은 다시 되돌릴 수 없어 무작정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지금처럼 사람을 먼저 구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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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효과 좋아 99%가 마감재로 사용..사고 위험도 높아”

(군포=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섀시 교체 작업의 99%가 마감재로 우레탄폼을 사용합니다. 비용도 싸고 빠르지만 그만큼 조심해야죠.”

화재 원인을 찾아라 (군포=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군포시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2일 오전 경찰과 경기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이 아파트 12층에서 난 화재로 4명이 숨졌다. 또 1명이 중태에 빠지는 등 7명이 다쳤다. 2020.12.2 xanadu@yna.co.kr
화재 원인을 찾아라 (군포=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군포시의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2일 오전 경찰과 경기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이 아파트 12층에서 난 화재로 4명이 숨졌다. 또 1명이 중태에 빠지는 등 7명이 다쳤다. 2020.12.2 xanadu@yna.co.kr

지난 1일 폭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로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군포시 산본동 백두한양9단지 아파트 화재 현장.

불이 시작된 아파트 12층에서는 오전 8시부터 작업자 5명이 모여 노후한 섀시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헌 섀시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것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비교적 작업 방식이 간단해 작업자들도 이날 하루 안에 작업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4시 37분 발생한 사고로 이들 중 2명은 불길을 피하려다 지상으로 추락해 숨졌고, 아파트 주민 2명이 목숨을 잃는 등 4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섀시 교체 작업은 도대체 어떤 공정으로 이뤄지기에 이처럼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었던 걸까.

경찰과 소방 등 관계기관이 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합동 감식을 진행 중이어서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선 조사가 이뤄져야겠지만, 우선 의심할 수 있는 건 우레탄 폼 작업으로 발생한 유증기가 화기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이다.

인테리어 업계에 따르면 섀시 작업은 보통 ▲ 기존 창문 및 몰딩, 문틀 제거 ▲ 새 문틀 가설치 ▲ 마감재를 이용한 틈새 메꾸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주문 제작 등을 통해 새 문틀이 기존 문틀과 크기 차이가 거의 없을 때는 마감재도 적게 들어가지만, 미리 만들어진 제품을 쓸 경우는 문틀의 크기 차이만큼 마감재를 더 사용해 공간을 메꿔야 한다.

이때 마감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우레탄폼이다.

단열재로 쓰이는 우레탄폼은 사용이 쉽고 가격이 저렴하며 단열 효과가 뛰어난 반면, 불이 쉽게 붙고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배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작업 중 유증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경우 유증기가 쌓였다가 화기에 의해 폭발하기도 한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의 경우도 우레탄폼 작업이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A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는 “섀시 공사는 많든 적든 우레탄폼을 사용한 공정이 필수적인데 환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화재 당시 폭발음이 들렸다면 유증기에 의해 사고가 난 것으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군포 아파트 12층서 불…소방당국 "사망자 4명 확인" (서울=연합뉴스) 1일 오후 4시 37분께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이 불로 현재까지 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진은 화마에 휩싸인 사고 아파트의 모습. 2020.12.1       [독자 한병기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kmpooh@yna.co.kr
군포 아파트 12층서 불…소방당국 “사망자 4명 확인” (서울=연합뉴스) 1일 오후 4시 37분께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이 불로 현재까지 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진은 화마에 휩싸인 사고 아파트의 모습. 2020.12.1 [독자 한병기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kmpooh@yna.co.kr

이 밖에도 작업장에서 발견된 전기난로가 화재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군포 화재 현장에서는 전기난로가 나왔는데, 난로 부근에서 가연성 물질인 폴리우레탄과 시너 등도 함께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추운 날씨 속 작업자들이 난로를 켠 상태에서 작업하다 주변에 있는 인화물질로 불이 옮겨붙었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소방 관계자는 “겨울철 공사를 하면서 작업자 편의를 위해 난방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체가 위법은 아니지만, 인화물질과 충분한 거리를 띄우고 전담 감시인을 두는 등 충분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며 “작업 도중에도 가스 등이 갇혀 있지 않도록 환기를 자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stop@yna.co.kr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경향신문]
1980년대 중반 중미 니카라과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콘트라’라는 우익 반군조직에 몰래 무기를 살 자금을 건넸다. 그 돈은 미국의 적이었던 이란에서 흘러나왔다. 이란은 당시 미국을 등에 업은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란 돈이 니카라과로 흘러간 경로에는 이스라엘이라는 거간꾼이 있었다. 이란의 적인 이스라엘이 이란에 미국산 무기를 넘기고, 그 무기값을 니카라과 반군에 건넨 것이다.

누가 누구의 편이고, 누구의 적이었을까. 1987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을 정치적 궁지로 몰고간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공식적인’ 우호관계나 적대관계 뒤편에 여러 선들이 얽히고설켰다. 국제관계에서 ‘완전한 친구’나 ‘완전한 적’은 없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도 관계가 달라지지만, 국가라는 것은 원래 일관되고 단일한 행위자가 아니다. 이란과 이스라엘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테헤란 근교에서 암살당했다.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란과의 핵합의를 복원하는 걸 막기 위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늘 이란과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 1970년대까지 두 나라 관계는 좋았다. 이란은 터키에 이어 이슬람국가로서는 두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국으로 인정한 나라였다. 특히 이란 파흘라비 왕정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다. 이스라엘 역시, 이슬람국가이지만 아랍국이 아닌 이란을 연대의 대상으로 봤다.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국들의 ‘6일 전쟁’ 때에도 이란은 이스라엘에 석유를 내줬다. 이 시절 이란은 이스라엘과 합작한 에일라트-아슈켈론 송유관을 통해 유럽으로 석유를 수출했다. 이스라엘 엘알항공 여객기가 텔아비브와 테헤란을 오갔다. 군사협력도 적잖았다. 1977~79년에는 두 나라가 함께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기도 했다.

1975년 이란 국방부 관리들이 텔아비브의 이스라엘군 사령부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Wikimedia Commons
1975년 이란 국방부 관리들이 텔아비브의 이스라엘군 사령부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Wikimedia Commons


그러다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났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이란 혁명이 동·서 양쪽 진영을 모두 거부하고 이슬람이라는 ‘다른 길’을 택함으로써 미국과 소련 모두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고 설명한다. 친미 왕정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이란이슬람공화국은 미국에 등을 돌렸을뿐 아니라 이스라엘과도 단교했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합법성도 부정했다.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이라 규정했고 미국이라는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이라 지칭했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1980년 미국의 지원 속에 이라크가 이란을 공격하면서 8년 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이란을 은밀히 도왔다. 1981년 이스라엘은 ‘오페라 작전(바빌론 작전)’을 통해 이라크 오시라크의 원자로를 폭격했고 이란에 무기를 팔았다. 대전차무기 M40 무반동총, 탱크 부품과 항공기 엔진 등이 아르헨티나 항공기와 배를 통해 이란으로 실려갔다. 이스라엘은 1981~1983년 이란에 5억달러 어치의 무기를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기간 테헤란 북쪽의 비밀기지에 이스라엘 군사·기술자문관 100여명이 머물렀다는 얘기도 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2000년대에 총리가 된)은 이란과의 사이에 “작은 창문이라도 열어 놓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어난 것이 콘트라 스캔들이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18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이란에 ‘비밀 핵창고’가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18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이란에 ‘비밀 핵창고’가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신세계 질서’를 천명하면서 걸프전을 일으킨다.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90년대가 되자 갑자기 ‘세계의 악당’으로 추락했다. 이라크는 걸프전 뒤 국토의 절반 가량이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였고 미국이 주도한 제재 속에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됐다. 이라크가 무력화됨으로써 중동 복판에 정치적 진공상태가 만들어졌고, 이란은 그 틈을 이용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반이스라엘 무장정치조직들을 주도하며 역내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란과 유지해오던 ‘차가운 평화’도 깨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정부는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하고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했지만 이란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한층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199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스라엘 대사관 테러공격, 그리고 2년 뒤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유대인 시설 폭탄테러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반정부 조직 무자히딘할크(MeK·인민전사)을 지원하며 이란에서 암살과 테러공격에 관여하고 있었다.

두 나라의 적대관계는 이렇게 대리전(proxy war)으로 옮겨갔다. 이란에서 1997~2005년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잠시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하타미는 이란의 유대인들은 모두 종교적 소수집단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이란 태생인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을 2005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장례식에 만나 끌어안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그러나 하타미 역시 이스라엘을 ‘불법 국가’ ‘기생충’이라 불렀다.


결정적으로 이란을 고립시킨 것은 ‘핵 의혹’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으로 망명한 무자히딘할크 출신 등 해외 반체제 인사들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2005년 취임한 이란의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도에서 이스라엘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발언했고, 홀로코스트를 부인했으며, 혁명수비대를 동원해 중동 곳곳에 팔을 뻗었다.

2010년대 초반 이스라엘은 마수드 알리모함마디 등 이란 핵과학자들을 잇달아 암살했다. 2010년 6월에는 스턱스넷이라는 바이러스가 이란 핵프로그램을 공격해 나탄즈 핵시설에 보관돼 있던 농축우라늄의 10%가 못쓰게 됐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짓이라고 발표했다. 2011년에는 이란 이스파한의 핵 시설이 폭파됐다.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으로 혁명수비대 장성 하산 모카담 등 17명이 숨졌다. 이듬해 2월 폭로된 위키리크스 문건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쿠르드 전투원들과 함께 이스파한 폭발공작에 관여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2013년 1월에는 이란 포르도의 핵시설에서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고, 이란 측은 모사드와 미 중앙정보국(CIA)을 의심했다.

미국이 고강도 제재를 하기는 했으나 이란의 핵 개발은 북한과는 달리 우라늄을 농축하는 단계였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란은 억압적이지만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가능한 나라다. 오랜 제재로 피폐해진 이란은 2013년 다시 온건파 정권을 택했다. 2015년 국제사회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형태로 핵 사찰과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합의를 했다. 하지만 그후 이란을 고립시키려는 이스라엘의 분투는 더욱 심해졌다.

2015년 4월 스위스 로잔에서 존 케리 당시 미국 국무장관(맨 오른쪽),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왼쪽 4번째)과 중국·러시아·독일·유럽연합 대표 등이 이란 핵합의를 발표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년 4월 스위스 로잔에서 존 케리 당시 미국 국무장관(맨 오른쪽),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왼쪽 4번째)과 중국·러시아·독일·유럽연합 대표 등이 이란 핵합의를 발표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란 핵합의에 따른 이스라엘의 위기감을 이해하려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심축에 놓고 들여다봐야 한다. 걸프의 아랍 전제왕정들과 달리 혁명 이전 이란 파흘라비 왕조의 레자 샤와 그 아들 모함마드 레자는 계몽군주를 자처하며 서구화에 매진했다. 혹자는 그 시절의 이란과 이스라엘을 미국의 ‘두 마리 사냥개’에 비유하기도 한다. 둘 다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받쳐주는 나라들이었으며 특히 유라시아 복판의 대국인 이란은 핵심적인 존재였다.

이란이 그 틀을 깨고 ‘민중혁명’을 통해 반미 이슬람국가로 변해버리자 미국의 중동 체스판에서 이스라엘의 중요성이 커졌다. 홀로코스트라는 원죄에 대한 서방의 죄의식, 유대국가에 느끼는 문화적 동질감, 미국 내 유대계의 로비 등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만일 이란이 중동의 거대한 친미국가로 남아있었다면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미국에 중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콘트라 스캔들이 보여주듯이, 이스라엘은 미국이 대놓고 할 수 없는 행위들을 뒤에서 대신 해주는 존재였다. 정보를 수집하고, 미국의 친구에서 적으로 바뀐 이라크 사담 정권을 흔들기 위해 쿠르드족을 지원하고 이란 이슬람정권에 반대하는 무자히딘할크를 돕는 것이 그런 일들의 일부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이 냉전 때 아프리카에서 수행한 역할을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했던 것이다. 중동에서만이 아니었다. 중남미 우익 반군들에 흘러들어간 무기들 상당수가 이스라엘이라는 브로커를 거쳤고, 이스라엘 민간군사회사(PMC) 용병들이 곳곳에서 반미 세력을 전복시키는 데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공 백인정권에 핵무기를 전파한 것도 이스라엘이었다.

1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항공기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 내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UAE 등 아랍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EPA연합뉴스
1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항공기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 내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UAE 등 아랍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오히려 갈수록 우경화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도 전쟁범죄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요인이 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에서는 반미감정이 더욱 높아지고 극단세력이 준동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이집트의 친미정권마저 무너졌다. 시리아는 내전에 휘말렸다. 그 사이에 이란은 이라크·시리아·레바논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동의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풀려면 이란을 국제적 논의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관계를 정상화하는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핵협상에 나선 것은 핵무기 확산을 막는다는 목적을 넘어, 지정학적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에 군사·재정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나라다. 끊임없이 이란을 경계하는 ‘작은 개’ 이스라엘의 불안감은 이란의 적대행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란의 ‘복귀’ 자체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두 나라 사이에 풀리지 않은 문제는 더 있다. 1979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이 이란에 줘야 할 석유구매대금이 당시 돈으로 약 10억달러였다. 이란 왕조가 붕괴하자 이스라엘은 이 돈을 떼어먹었다. 이란은 유럽에서 채무지불 소송을 여러번 내 승소했으나 이스라엘은 경제제재를 빌미로 거부하고 있다. 2015년 5월에도 스위스 법원이 이스라엘의 에일라트아슈켈론 송유사에 “이란에 11억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이스라엘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브라마푸트라강 하류에 10GW 규모 댐건설 검토

인도 동북부 아삼주를 지나는 브라마푸트라강. [AP=연합뉴스]
인도 동북부 아삼주를 지나는 브라마푸트라강. [AP=연합뉴스]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중국과 국경 문제로 갈등 중인 인도가 이번에는 국경 지역 댐 건설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중국이 자국에서 인도로 흘러가는 강 상류에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인도가 하류에 이에 대응할 댐 건설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1일 인도 정부가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브라마푸트라강(중국명 야루짱부강)에 10GW 규모의 댐 건설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인도의 이번 반응은 최근 중국이 브라마푸트라강에 60GW 규모의 수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전력건설집단(파워차이나)의 옌즈융(晏志勇) 회장은 지난달 26일 이와 관련한 계획을 공개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싼샤(三峽)댐의 발전 용량이 22.4GW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새롭게 건설할 댐들의 크기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미 2014년 짱무(藏木) 지역에 야루짱부강 첫 번째 댐을 완공한 상태다.

중국-인도-방글라데시를 관통하는 브라마푸트라강의 위치.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캡처]
중국-인도-방글라데시를 관통하는 브라마푸트라강의 위치.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캡처]

약 4천700㎞ 길이인 브라마푸트라강은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원해 중국 티베트와 인도 아루나찰프라데시주와 아삼주를 거쳐 방글라데시 벵골만으로 흘러나간다.

인도는 중국의 이번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해 자국에 흘러드는 수자원이 고갈되거나 홍수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수자원부의 고위 공무원인 T.S. 메흐라는 중국 댐 프로젝트가 물흐름에 줄 충격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저수 용량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측 건설안은 현재 정부 고위층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도 측 댐은 우기에 유량이 갑자기 늘어날 때는 유용하지만 중국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해 유량이 줄어드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메흐라는 이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인도와 중국은 1962년 국경 문제로 전쟁까지 치렀지만, 국경선을 확정하지 못한 채 실질통제선(LAC)을 경계로 맞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5월 판공호수 난투극, 6월 갈완 계곡 ‘몽둥이 충돌’, 45년 만에 총기 사용 등 라다크 지역에서 양국 군이 잇따라 충돌하면서 긴장이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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